16번 글쓰기=>王世子를 먼저 보낸 王의 울부짖음과 殉職한 아들을 먼저 보낸 父母의 울부짖음을 어찌 알리오? [2025년…
작성자 최고관리자

        

          16번 글쓰기=>王世子를 먼저 보낸 王의 울부짖음과 

       殉職한 아들을 먼저 보낸 父母의 울부짖음을 어찌 알리오? 

                          [2025년9월11일] 


0.조선 22대 정조 대왕의 큰 아들 文孝世子

1.조선 22대 正朝 대왕

  1] 생애=>1752년 10월~~1800년 8월

  2] 재위=>1776년 4월~~1800년 8월

  3] 아버지=>사도세자

  4] 어머니=>헤경궁 홍씨


2.文孝世子

 1] 생애=>1782년10월~~1786년 6월{약 4년]

 2] 22대 정조의 큰 아들 왕세자

 3] 생모=>宜嬪 成氏=>아들 죽고  4개월 만에 굶어서 사망

 4] 사망이유=>紅疫

 5] 園=>孝昌園 [세자의 墓地는 園이라 한다] [생모 의빈 성씨 같은 장소]

 6] 孝昌園=>1944년=>경기도 고양시 西三陵으로 이전

 7] 孝昌公園 정식 명칭=>1989년 6월 28일 [약 3만7300평]


3.정조와 의빈 성씨 애절한 아들 사랑 스토리

 1] 효의왕후에게 아들이 없다가 의빈 성씨가 문효세자 아들을 낳았다

 2] 문효세자는 3살 때부터 천자문 등 학문에 천재적인 기질을 보였다

 3] 정조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이어나갈 후계자로서 많은 자부심을 가졌다

 4] 정조가 경연[經筵]장에 나갈 때는 4살 문효세자를 데리고 간다

 5] 문효세자를 데리고 간 이유 한 가지는 경연장에서 왕의 수업을 받는 것이다

 6] 또 한가지는 똑똑한 아들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7] 그런 아들이 갑자기 전국을 휩쓰는 역병[疫病]즉 홍역[紅疫]에 걸린 것이다

 8] 조정과 동궁[東宮] 그리고 정조와 어머니 의빈 성씨에게는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9] 문효세자를 살리기 위해서 당대 최고의 어의[御醫]는 물론 전국 명의[名醫]들이 모두 모였다

 10] 정조는 세자를 옆에 지키면서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11] 하늘이시어 어찌 나에게 이런 천벌을 내리 나이까? 내 아들을 살려 주시옵서소!

 12] 그러나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온몸에 붉은 반점은 점차 늘어났다

 13] 임금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용포자락은 온통 눈물로 베였다

 14] 당시에 임금의 모습은 위엄과 권위는 찾아 볼 수 없는 한 낯 필부의 아버지였다

 15]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시장의 걸인과도 같았다고 한다.

 16] 1786년[정조 10년] 5월 11일 문효세자는 눈을 감았다

 17] 당시에 아버지 정조는 목 놓아 통곡했으며, 어머니 의빈 성씨는 기절해 쓰러졌다 

  18] 세자의 사망 후 4개월 만에 어머니 의빈 성씨는 만삭[滿朔]인 임신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4.효창공원의 유래

 1] 정조는 전국의 최고 地官들에게 명하여 아들의 묘지를 찾으라 했다.

 2] 임금은 창경궁에서 잘 내려다 보이는 효창원[孝昌園]을 선정했다

 3] "孝誠스럽고 繁昌 하리라"의미의 이름이었다

 4] 임금과 왕후의 묘는 릉[陵]이라 부르고 세자와 세자비의 묘는 원[園]이라고 불렀다

 5] 1786년 7월 19일 예장[禮葬]에 의해서 장레식이 있었다. 사망 후 3개월 만이다

 6] 왕과 왕후는 國葬으로 5개월 세자와 세자빈은 예장으로 3개월만에 발인[發靷]을 한다

 7] 정조는 발인에서 하관[下棺]까지 모든 과정을 통곡하면서 지켜 보았다.

 8] 문효세자 사망 4개월 후 의빈 성씨도 이곳 아들과 함께 효창원에 안장되었다

 9] 효창묘에서 효창원 정식 명칭은 26대 고종때였다

 10] 1894년 세월이 흘러서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11] 1921년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9홀 최초 골프장이 운영된 적도 있었다

 12] 1944년 일제 강점기 해방 1년 전 일본은 강제로 효창원을 이장[移葬]했다

 13]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西三陵]이다

 14] 1949년 효창공원에는 김구선생 그리고 윤봉길.이봉창.백정기.안중근[假墓]가 있다

 15] 1959년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효창운동장이 착공되었다

 16] 1989년 6월 28일 "대한민국 史蹟"으로 고시되었다

 17] 20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현충원"과 "국립묘지화 결사반대" 프랑카드

 18] 2025년6월30일 국회 발의안 민주당 민병덕의원


0.王世子를 먼저 보낸 王의 울부짖음과 殉職한 아들을 먼저 보낸 

  父母의 울부짖음을 어찌 알리오? 

1.왕세자의 부모님이나 우리 순직한 아들의 부모님 심정은 모두 같다

2.왕의 울부짖음이나 유가족의 울부짖음 슬픔을 어찌 알리오?

3."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는 현충원"이나 "효성으로 번창하라는 효창원"이나 국가보훈이다

4.의빈 성씨가 아들 곁으로 갔다. 우리 어머니들도 사망 후 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5.정조 대왕이 "나는 죄인이다"라고 했다 "우리 부모들도 모두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6.대통령이 아무리 "제복의 영웅" 유가족이라 불러도 어미 애비는 그냥 죄인이라 생각한다.

7.이렇듯 왕세자든 순직한 아들이든 모두가 국가안보 위한 희생자가 아니겠는가? 

 

 

작성자=>대한민국 순직군인 유족회장

작성일=>2025년9월13일